진짜 세상이란?

[기고]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보며, 한미FTA를 생각한다 (프레시안)

사물해커 2008. 9. 20. 00:43

 한국경제, '시장만능주의'로 치닫는 '경주마'인가?

 

한미FTA의 목적은 무엇인가. "관세 장벽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비관세 장벽, 곧 한국의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미의회조사국 보고서, 2006년 5월 25일) 이 사실은 우리 정부도 시인한 바 있다. 2007년 9월 7일 한덕수 당시 총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한미FTA는 (…) 우리 제도와 관행을 선진화하는 계기"라고 밝혔다.
  
  문제는 '선진화'의 내용일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줄탁동시'를 고려하면, '선진화'는 '금융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미국식 모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몇 해 전부터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려 달러화의 위기를 부추긴다는 분석들이 횡횡했다. 최근에는 미국 투자금융 회사들의 파산과 구제금융 신청으로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성이 현실화됐다. 우리 정부와 관료들이 '선진화'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선진화'의 과정을 살펴보자. 2006년 7월 14일, 한미FTA 2차 협상이 끝났다. 무역구제, 상품, 환경 부문에 대한 양측의 이견으로 결렬됐던 이 협상에서 한미 양국이 합의한 부문이 있었다. 그 부문은 바로 '신금융상품' 부문이다. 한미 양국은 이 협상에서 상업적 주재가 있어야 하며, 상대국의 법률의 제정·개정을 요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며, 상품별로 금융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이 합의의 핵심은 '상대국 법률의 재·개정을 요하지 않는 (금융상품의) 범위'다. 협상 당시 우리의 금융정책은 '포지티브 방식(법에 열거된 상품만 허용하는 방식)'이었다. 미국계 금융산업이 정통한 신금융상품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표현이다.
  
  눈여겨봐야 할 문서는 한참 뒤에 공개됐다. 부속서13-나 제9절을 보자. "미합중국은 상품신고절차에 대하여 예외목록 접근방식(네거티브 리스트)에 기초한 정책 및 절차를 이 협정의 발효 후 1년 이내에 채택하기로 한 대한민국의 계획을 환영한다." 대한민국의 계획이란 대표적으로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을 의미한다. 정부 스스로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풀기로 했던 것이다.
  
  2007년 1월에는 산업은행이 JP모건은행과 신용스왑거래(CDS)를 시작했다. 산업은행이 보장매입자(위험을 전가하는 쪽), JP모건은행이 보장매도자(위험을 수취하는 쪽)이었다. SK에 대출한 100억 원에 대한 원금이 기초자산이었다. 산업은행이 보장매도자가 아니기에 JP모건이 파산할 경우, 산업은행의 손실은 JP모건 측에 지불하던 0.3%의 이자가 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거래였다. 눈여겨둬야 할 부분은 우리나라는 자산유동화법상 특수목적회사(SPC)가 CDS 거래를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점이다. 부연으로 설명하자면 특수목적회사는 자산유동화(대출채권이나 매출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증권형태로 전환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를 위해 필요한 법인형태다. 특수목적회사의 CDS 허용은 CDS 활성화에 필수적인 요소다.
  
  정부는 특수목적회사의 CDS 거래 허용을 골자로 하는 <자산유동화법> 개정은 <자본시장통합법> 실시 이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2007년 7월 3일 국회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됐다. (필자는 이 법안에 '기권'했다. 금융고객들의 편의가 높아지는 데에는 찬성하지만, 투자금융의 비대화가 가져올 위험성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금융상품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법에 열거된 상품만 금지)으로 바뀐다는 것도 포함돼 이었다.
  
  이 내용을 담은 법이 통과된 지 3일 후, 권오규 당시 경제부총리는 한 강연회에서 "(우리 은행들은) 리스크를 활용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파생상품 등 새로운 금융상품·기법을 활용한 영업 전략이 부족하다. 선진 투자은행들은 CDS, CDO, ABS 등 신용파생상품을 개발하고 거래하는 데서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금융 CEO들을 대상으로 한 독려의 성격이었다.
  
  다시 1년 후 현재의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9차 금융규제개혁심사단 심사결과를 통해 <자산유동화법> 2조의 개정으로, 특수목적법인의 합성CDO(부채담보부 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5월에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는데, 그 내용은 특수목적법인의 사채발행 한도가 폐지되고 내년 2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신용파생시장은 우회로를 이미 확보해 둔 상태다.
  
  또한 지난 7월 24일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보험사의 경우에도 신용스왑거래(CDS)를 허용하고, 파생상품 투자유형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정해 영업부문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 "채권보유자가 신용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합성 CDO 발행도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과정은 명백히 '금융자본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미FTA에 담긴 두 가지의 내용은 이 '선진화'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첫째는 한미FTA 「투자챕터 제11.12조(비합치조치) 제1항 다호」와 「국경 간 서비스무역챕터 제12.6조(비합치조치) 제1항 다호」에 명기된 이른 바 '역진방지조항'이다. 이로써 '금융자본주의'를 목표로 제·개정되는 <자본시장통합법>, <자산유동화법>, <상법> 등의 후퇴는 불가능하다. 둘째는 '역진방지조항'과 결합하게 될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ISD)'다. 파생상품들의 위험성을 조절할 수 있는 '규제'는 우리나라에 진출한 투자금융 회사들의 소송 대상이다.
  
  대한민국 금융 정책은 '외길'이다. '아시아 금융허브'라는 아지랑이를 잡기 위해 도처에 도사린 위험은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뛰어가는 '경주마'다. 하지만 우리는 '금융자본주의'의 결말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국유화했고, 금융시장에 500억 달러를 풀었으며, AIG에 850억 달러를 투입했다. '시장의 실패'를 국민이 보상하는, '가장 타락한 형식의 사회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한편, 미국이 시장에 대해 개입하는 것과 반대로 우리 정부는 '시장만능주의'로 치닫는 형편이다.
  
  우리 정부의 '맹목적 질주'를 견제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 '자기책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한미FTA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최재천/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