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세상이란?

버블세븐 아파트 4억 내려도 안 팔려

사물해커 2008. 10. 3. 19:50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양지마을의 전경.
ⓒ 오마이뉴스 선대식
양지마을

 

"잘 모르겠어요."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에게 "최근 집값이 얼마나 떨어졌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그는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는데, 모르고 있는 게 속 편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곳 상가에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즐비했지만, 업소 바깥엔 시세 정보를 알 수 있는 게시판 하나 없었다. 중개업소 안에서도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아파트 시세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찡그리기 일쑤였고, 나가라는 손짓과 함께 말문을 닫은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책상엔 이날 조간신문의 부동산 면이 펼쳐져 있었다. '버블 세븐'(서울 강남·서초·송파·양천구와 경기도 성남시 분당·안양시 평촌·용인시) 지역 중심으로 집값 하락세가 두드러진다는 내용이었다.

 

"강남과 분당에서 각각 10억·6억 이하의 30평(99㎡)대 아파트 매물이 나왔다"며 "심리적 가격 저지선이 무너졌다"는 보도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날 만난 주민들은 "집값이 하락세인 것 맞는데, 언론에서 호들갑 떨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몇 천만원 싼 급매물이 나와도 팔리지 않는다"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한 주민이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즐비한 상가를 지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부동산

 

분당 수내동의 양지마을은 언론들이 6억 이하의 매물이 나왔다고 지적한 곳. A 중개업소 김형석(가명) 대표는 "109㎡(33평) 아파트 6억짜리 매물이 한 달 전에 팔렸고, 최근에 5억 9000만원짜리 급매물이 나왔지만 처분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거래가 안 되고 있어, 아파트이 시가가 얼마라고 말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로얄층의 경우 호가가 7억2000만원까지 나오고, 보통 매물 가격은 6억 5000만원 내외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109㎡ 아파트는 지난 2006년 10~11월의 8억원이 최고점이었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대형 아파트의 하락률은 더욱 컸다. 165㎡(50평) 아파트의 경우 2년 전 15억원의 최고점을 찍은 후 현재 11억원 이하의 매물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팔리진 않는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매도 세력과 매수 세력이 모두 시장을 관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매도 세력은 종부세나 부동산 규제가 완화되니 앞으로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있고, 매수 세력은 경기 침체로 집값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B 중개업소 최형태(가명) 대표는 "시세가 6억원 이하인 게 맞다, 일부 거래되는 게 모두 6억원 이하"라고 밝혔다. 양지마을의 3가지 아파트 브랜드 모두 5억 7000만원~6억원 사이에서 거래된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 불안 때문에 더 떨어지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종부세 완화 등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게 시중에 돈이 말라 매수자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어서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심리적 공황상태다. 집값이 떨어지면 큰 충격이 오지 않느냐. DTI(총부채상환비율),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완화해서라도 부동산 시장을 살려야 한다."

 

주민들 역시 급격한 집값 하락을 경계했다. 2002년 5억원에 구입한 238㎡(72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김지애(가명·48)씨는 "최고 18억원까지 갔다가 지금은 13억원인데, 이 정도면 적당한 가격"이라며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데, 집값이 떨어져 요새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값 하락을 반기는 주민도 있었다. 현재 79㎡(24평)에 산다는 한 30대 주부는 "이 지역에서 이런 말하면 욕먹을 것 같다"면서도 "6억원이라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더 떨어져야 하지 않나, 그래야 서민들도 집을 사고 더 큰 집으로 이사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진다고? 언론 호들갑!"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오마이뉴스 선대식
은마아파트

10억원 이하의 30평(99㎡)대 아파트 매물이 나와 심리적 저항이 무너졌다는 강남은 어떨까? 언론에서 대표적으로 지목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찾았다. 많은 중개업소나 지역 주민 모두 "10억원이 왜 심리적 저항선이냐?"며 기자에게 되묻는 일이 벌어졌다.

 

현재 은마아파트 102㎡(31평)는 9억~10억원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고, 112㎡(34평)는 11억~11억 6천만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2006년 하반기 최고점 13억 8500만원에 비하면 2억원 이상 떨어졌다. 하지만 인근 미도아파트(115㎡·35평)가 1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떨어진 것에 비하면 낙폭은 적은 편이다.

 

C중개업소의 문태석(가명) 대표는 "전체 4424세대 중 한 달에 겨우 5건 거래된다"며 "그 물량은 경매 들어가기 전에 급하게 나온 것이다, 보통 가격보다 1억원 싸게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28년 된 이 아파트가 3.3㎡(1평)당 3000만원을 유지하는 건 순전히 재건축 때문이다, 주변 재건축한 아파트는 3.3㎡당 5000만원"이라며 "재건축만 하면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주민들은 재건축 규제가 풀리기만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이현미(가명·52)씨는 "집값이 얼마가 적당하다고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규제를 모두 푼 다음, 가격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지금과 같이 경기 침체일 땐, 부동산으로 경기 활성화를 시키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집값 떨어지는 건 싫지만, 솔직히 너무 많이 올랐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만난 주민들이 모두 집값 하락에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건 아니었다. 자산 가치 하락을 좋아할 만한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까지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사실에 대부분 동의했다.

 

은마아파트에 산다는 한 50대 주부는 "집값이 떨어져서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다른 지역과 다를 게 없지 않겠느냐"면서도 "10억원 이하로 떨어졌다는 게 특별한 충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혜진(가명·56)씨 또한 "다른 곳도 다 떨어졌는데, 기분 나쁠 게 뭐 있느냐"며 "지금까지 많이 올랐다, 더 떨어져야 정상 아니냐?"고 전했다.

 

앞서 만난 문 대표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할 때 102㎡는 3억원, 112㎡는 4억원이었다"며 "솔직히 이 정도 크기는 아무리 강남이라고 해도 중산층이 살아야 하는 곳이다, 5억~6억원이 정상인 가격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08.10.03 18:35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