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세상이란?

이범, "MB정부 교육정책은 일본식 교육정책"

사물해커 2008. 10. 13. 16:59

[교육] 교육평론가 이범, 속 시원히 밝히는 우리 교육 문제의 비밀

▲교육평론가 이범
ⓒ 나눔문화 nanum.com

9일 저녁 7시, 광화문 ‘나눔문화’에서 열린 <11기 평화나눔 아카데미> 3강 ‘꼴찌도 행복한 나라의 교육’에 50여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이날 강연의 연사는 교육평론가이자 전 곰TV 강사였던 이범 씨.

서울대를 졸업한 후, 강남 학원가에서 ‘과탐 스타강사’로 활약한 그는 지난날의 부와 명성을 뒤로 한 채 무료 인터넷강의와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구체적으로 꼬집는 평론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이다.

빈자리 없이 채워진 강연장에는 주로 자녀를 둔 30~40대 학부모들이 대다수였지만 이범 전 강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 멀리서 달려온 청소년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평준화’는 과연 학생들 성적을 떨어뜨릴까?

이범 전 강사는 ‘평준화’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현 정부와 보수언론이 자꾸 평준화로 학생들 실력이 떨어지고 공부를 안 한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는데, 실제로 학생들이 옛날보다 공부를 덜 하나요? 더하면 더했지요. OECD 국가들의 학력수준을 테스트하는 PISA 시험을 보면 항상 한국이 5위 안에 들어요. 평준화가 좋은 이유는 두 가지에요.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도 매우 상식적인 건데, 무시험으로 중고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게 하는거고 두 번째는 교육재정을 모든 학교에 골고루 나눠줄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물론 고쳐야 할 부분도 있어요. 모든 학교의 교육 과정과 내용이 획일적인 것이 문제인데 핀란드같은 경우는 이미 수업의 20%를 학생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줘요. 고등학교는 아예 학년 제한이 없고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죠.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구요. 얼마 전 수능 문과 수학에 미적분을 부활시킨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왜 문과 학생들이 자기 적성과 전공에 관계없는 어려운 내용을 똑같이 공부해야 합니까?”

‘학교자율화’는 학생과 교사에게 주어져야

지난 4월 15일 발표된 ‘학교자율화 조치’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자율이란 걸 누구에게 주느냐가 중요해요. 지금 정부의 학교자율화는 말 그대로 교장과 교육청 관료들에게 교육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거죠. 원래 학생과 교사에게 주어야 진정한 의미의 자율화가 이루어질 수 있죠.”

“서울 성심여고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할 때 성적순으로 짜르는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선택해서 들어가요. 레벨이 낮은 반에 들어간 학생이 전혀 창피해하지 않죠. 반 이름도 ‘상-중-하’ 이런 식이 아니구요. 이런게 진짜 자율과 가깝지 않을까요?”

30분 째 숨 고를 틈도 없이 빠르고 명료하게 이어지는 강연에도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귀를 기울였다. 수첩에 강연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하며 듣는 이들도 보였다.

▲"자율은 교장이나 교육청 관료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한국 교육, 이래서 문제다

이범 전 강사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 3가지를 꼽았다.

“첫째, 학교들이 일등부터 쭉 서열화되어 있고 학생을 성적순으로 뽑아요. 입시는 정말 인생 원샷 게임이죠. 요즘 큰 문제는 특목고다 자율형 사립고 설치다 해서 중학생들까지 서열 높은 학교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시키려 하고 있죠.”

“둘째, 학교가 너무 무책임해요. 공교육이면 국가가 책임져줄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이를테면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권, 기초적인 학력, 인성 교육인데 학생들 밥도 제대로 안 먹이는 교육에서 그런걸 기대하기 힘들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래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교장을 뽑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셋째, 사교육이 너무 번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 학습시간이 2-3년전 통계를 보면 일본 학생들의 2배에요.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5배가 나와요. 교육제도가 사교육을 통해서만 학생이 선발되기 유리하게끔 되어있는데, 여기에서 돈 있는 집과 없는 집 차이가 엄청 벌어지죠. 이런걸 보면 우리나라 교육엔 ‘기회의 평등’조차 없는 셈입니다.”

사교육 전문가답게, 그는 사교육 문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 제일 중요한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학원주도적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자신만의 공부법 같은 것도 없고, 자꾸 남에게 의존하려고 하고... 강남에서 일주일에 학원 7-8군데 다니는 중학생들이 고1되면 성적이 팍 떨어질 때가 있어요. 일종의 학원중독증에 걸린거죠.”

“요즘은 사교육이 점점 대형화되고 몸집이 커져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만약 주식시장에 사교육 기업이 올라가게 된다면 투자하는 사람들이 정부 교육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죠. 사실 이렇게 되면 사교육을 막기 힘들어져요.”

강연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만큼 사교육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피부에 와 닿는 심각한 고민거리다.

미국 입시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그는 ‘현 정부 교육정책의 모델은 미국식도 유럽식도 아닌 일본식’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대학을 입학할 때 SAT(미국 수능) 성적 외에도 내신 성적 비중이 엄청 높아요. 그런데 이 내신이란 뭔고 하니, 등수는 없고 A, B 같은 평점만 있어요. 수업 내용이나 학교 선생님들마다 가르치는 방식이 모두 다르고, 토론식·탐구형 수업 등을 해요. 여기에 더해 미국 명문대들은 봉사활동이나 스포츠 등 교외활동 경력을 엄청 중요하게 보죠. 등수로 서열화해 대학 보내는 건 일본식 교육제도에요.”

한 참가자가 최근 불고 있는 영어교육 열풍에 대해 질문했다. 국제화 시대에 접어들고 우리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70%를 넘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수준급의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냐는 물음이었다. 이범 전 강사는 ‘히딩크 식 영어’를 강조했다.

“히딩크가 영어하는걸 보셨으면 알겠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표현으로 자기 감정, 생각을 다 전달할 수 있죠. 그런게 바로 보편적으로 배워야 할 영어입니다. 지금 정부에서는 영어 교사를 늘린다고 하는데 사실 학교 수업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영어와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게 우선이에요.”

우리 교육문제의 해법

“제도적으로만 생각해보면, 우선 대학이 평준화되어야합니다. 그걸 하기 위해 국·공립대만이라도 통합해서 공동 학점을 주는 등 서울 명문대에 몰리는 현상을 줄일 필요가 있죠. 만약 이런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수도권에 국·공립대학을 더 늘리는 방법도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프랑스처럼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혁명적인 상황이 필요할겁니다.”

“두 번째로는 중고등학교의 학년제, 교육과정 전반을 바꿔야 해요.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줘야합니다. 또 교장 임용제 등을 도입해서 학교 운영을 민주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구요.”

하지만 그는 제도적인 개선만으로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래서 앞으로 바뀌어야 할 바람직한 교육의 상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첫째는 무책임·경쟁교육에서 돌봄 교육으로, 둘째는 획일적인 교육에서 맞춤형 교육으로, 셋째는 주입식 교육에서 창의적인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서 바꿔야 할게 있어요"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서 바꿔야 할 부분이 있다”

2시간 남짓한 긴 강연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냈다.

“어떤 교장 선생님이 자녀가 중학교 때까지 상위 5% 이내에 들지 못하면 공부를 포기시키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저희 아이들 생각하면 정말 앞길이 막막한데 혹시 우리나라 직업교육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초등학교 2학년, 4학년 학부모)

이범 - 유럽의 경우를 보면 비교적 일찍 자기의 적성과 진로를 고민해서 직업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형태만 비슷하게 따와서 공부에서 떨어진 학생들 취업할 수 있는 도구로 변해버렸죠. 사회에 나가기 전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건 발표능력, 글짓기, 수행탐구같은 것들이에요. 이 3가지는 공부를 하건 안하건 반드시 챙겨주셔야 합니다.

“저 자신도 100만 원짜리 고액과외를 받는 등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는데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교육 개혁이 이루어질까요? 또 우리 학생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최지윤, 고2 경기도 과천)

이범 - 아마 질문하신 학생이 대학가기 전까진 절대로 교육 개혁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 거에요(웃음). 제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많이 되찾고, 권한을 넓혀야 해요. 이를테면 두발 자유 같은 것들을 먼저 노력해야죠. 0교시나 야·자 문제도 마찬가지구요. 이번 촛불시위를 보면서 그래도 청소년들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쟁 위주의 교육이 바뀌려면 아무래도 사람들 인식이 크게 바뀌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20대 남성 네티즌)

이범 - 지금의 점수따기 경쟁교육은 크게 바라볼 때 이제 수명을 다했어요. 수월성 있고 효율적인 교육이라는 것은 사실 경쟁을 부추기고 등수를 매기는게 아니라 개개인이 잘하고 능력있는 분야를 더 키워주는 교육이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고 ‘협동적이고 창의적인 수월성 교육’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야겠죠.

한편 김유강(중3, 서울 노원구) 군은 이 날 강연에 대해 “좀 있으면 고등학교 입학을 하는데 중학생이라 잘 몰랐던 교육현실을 잘 알게 되어 좋았어요.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바뀔 수는 있지 않을까요?”라며 “우리나라 교육은 학생의 의견을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두발도 그렇고 자기가 직접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교육이요”라는 바램을 덧붙였다.

‘당하는 학생’이나 지켜보는 사람 모두를 답답하게 만드는 한국의 교육 현실. 이범 전 강사의 강연은 지금 우리 교육의 문제가 마술처럼 간단한 방법을 통해 풀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해결의 첫 실마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점수 따기 경쟁’이 아닌 진정한 교육의 실현을 위해 머리를 맞댈 때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