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세상이란?

이성태 "금융은 위기 진행 중…실물은 막 시작"

사물해커 2008. 9. 17. 17:44

  "금융 쪽은 (위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고 실물 쪽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정말 이 문제가 어디까지 연결돼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데 개인적으로 만난 한 투자은행 회장은 '이제 시작이다'고 하더라."(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미국 발 금융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17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나란히 출석한 두 사람은 외환보유고나 국내 금융시장 안정성은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나름대로 솔직히 시인했다. 불과 2주 전 국회 재정위에서 "상황이 어렵지만 위기는 아니다"고 강조할 때와는 태도가 다르다.
  
  "한은이 독립투쟁만 하고 있으면 되냐"
  
  정부가 이른바 '9월 위기설은 괴담'이라고 강조할 때도 "상황이 한참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소신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이성태 총재는 이날도 '소신'을 이어갔다.
  
  이 총재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오히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시작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지 않냐'는 민주당 강봉균 의원의 질문에 금융위기의 실물 위기 전화 가능성을 점쳤다. 그는 "1년 이상 끌어온 문제들이 하나하나씩 전개되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어려운 시기가 조금은 더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한국 금융시장의 주가 낙폭이나 환율 상승폭이 경쟁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큰 상황에 대해선 "한국은 다른 신흥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시 규모가 크고 환금성이 양호한 데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주식형 펀드의 대규모 환매 청구 등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기투자 성향의 적립식 펀드 비중이 높아 증시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고 금융시장 혼란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이 총재에 대한 한승수 국무총리의 '구두 경고'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은 "이 총재는 정부가 9월 위기설이 끝났다고 강조했을 때도 '상황종료는 성급하다'고 말하는 등 소신껏 발언을 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히 것"이라고 이 총재를 추켜세웠다.
  
  이어 강 의원은 "그런데 한승수 총리는 이 총재에게 (금융불안을 부추킨다)고 구두경고나 하는데 불과 며칠 만에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발생했다. 앞으로도 소신을 지켜달라"고 우회적으로 한 총리애게 화살을 날렸다.
  
  실제로 이 총재의 '소신발언'에 정부당국자들은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고 한 총리는 지난 주 경 이 총재에게 비공개 구두 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나라당 안효대 의원은 '비공개 구두경고'가 공개된 배경을 따지며 "국제금융 시장이 극도로 혼란을 겪고 있는데 한국은행이 독립투쟁만 하고 있을 것이냐"고 질의했다. 강 의원과 정반대 방향의 질문인 것으로 향후 한은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압박이 점점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총리가 공개적인 절차를 배제하고 비공개로 경고한 배경은 국가기관 사이의 문제라는 점에서 코멘트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각 기관들이 자기가 주어진 일을 하고 그 의사 결정이 주어진 절차에 따라 이뤄지면 된다고 본다"고 받아넘겼다.
  
  "롤오버는 문제없는데 자꾸 단기화된다"
  
  "앞으로 잘될 것"이라고 낙관하던 강만수 장관도 이날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금융위기의 지속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정말 판단하기 어렵다"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 장관은 '환율도 더 오르고 외자도 더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민주당 김종률 의원의 질문에도 "리먼과 메릴린치 문제의 해결은 불확실성이 해소된 측면도 있다"면서도 "앞으로도 우리 시장의 반응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강 장관은 '롤오버(채무 만기 연장)가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롤오버 자체는 문제는 없는데 단기화 돼가는 게 문제"라며 "금융시장이 경색되고 하면 롤오버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는 발행이 유보된 10억 달러 규모의 외평채 재추진 여부에 대해 "현재로선 언제 어떻게 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고, 공기업의 외채발행에 대해서도 "한 때는 독려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강 장관의 이같은 '솔직한 답변'은 금융시장의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시인하고 무리하게 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라는 측면으로도 받아들여졌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위기라고 해서 절대로 모르핀식 처방을 하지 말고 거시적으로 대응해 오히려 버블을 덜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고, 강 장관도 "동의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강 장관은 "요새 잠은 잘 자냐"는 김효석 의원의 질문에 "때때로는 잘 못 잔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 오제세 의원의 질의 과정에서는 "정부에서도 노력하겠지만 야당도 정부 신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주기 부탁한다"면서 "그리고 이 정부의 문제와 지난 정부의 문제를 분리해서 이야기해주길 바란다"고 '뿔'을 내기도 했다.
   
 
  윤태곤/기자